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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영화 추천, 남한산성(南漢山城, The Fortress, 2017년) 줄거리, 결말, 리뷰 -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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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영화 추천, 남한산성(南漢山城, The Fortress, 2017년) 줄거리, 결말, 리뷰 -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런투 2018. 10. 1. 00:05

영화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합니다.

1636년(인조 14년) 12월부터 이듬해인 1월에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제2차 침입으로 일어난 전쟁입니다.

병자전에 일어나 정축년에 끝났기 때문에 '병정노란'이라고도 불립니다.


한달 남짓한 짧은 전쟁이었으나, 그 피해는 임진왜란에 버금가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조선은 남한산성에서 항전을 계속하지만 결국 청나라에 항복하게됩니다.


이에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도로 나아가 청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게 됩니다.

그 결과 많은 신하들과 오아자들이 인질로 대청 황제의 공덕을 기리는 삼전도비(대청황제공덕비)를 세우게 됩니다.

이를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합니다.


영화 '남한산성'은 남한산성에서의 항전 모습과 삼전도의 굴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고, 이병헌(최명길 역), 김윤석(김상헌 역), 박해일(인조 역), 고수(서날쇠 역), 박희순(이시백 역), 송영창(김류 역), 조우진(정명수 역), 이다윗(칠복 역) 등이 출연하였습니다.

당시 함께 개봉했던 범죄도시로 인해, 영화의 관객 수가 약 385만명으로 저평가를 받았던 안타까운 작품입니다. 




인조는 청의 침략으로 인해 급하게 남한산성으로 대피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됩니다.




최명길은 청과의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청의 부대에 홀로 들어가 그들을 회유하죠.




그러나 청의 장군은 조선이 청의 신하가 되기를 무조건 강요합니다.




최명길은 돌아가서 청의 의사를 전달하게 되면서, 인조의 심기는 불편해 집니다.





조정은 주화론을 주장하는 최명길이 역적이라고 하면서, 청과의 전쟁을 대비하자는 목소리가 커집니다.

이에 군사를 남한산성에 모두 배치시킵니다.




청과의 전쟁을 위해 지원군을 요청하고자 하지만, 남한산성 주변은 이미 청의 군대가 에워싼 상황입니다.

조선군은 다행이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청의 군대로 인해 지원군을 부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시백의 활약으로 인하여, 조선은 청과의 전투에 자신감을 얻고, 청의 수비가 허술한 지역을 기습하자는 의견이나와 전쟁준비를 합니다.

엄청난 추위와 떨어진 사기로 인해 이시백은 반대하지만, 김류의 강행으로 어쩔 수 없이 적진으로 들어갑니다.




이시백의 예상대로 청의 부대는 조선군의 공격지점에 매복하여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조선군은 기습을 당하고 급히 후퇴를 하게 됩니다.



김류는 이시백에게 지원군을 보낼 것을 타전하지만, 이시백은 더 이상의 희생을 두고 볼 수 없기에 그 명령을 어깁니다.

이로 인해 모든 병사를 잃게 되고, 명령을 어긴 이시백은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청의 황제가 직접 이 곳까지 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인조는 매우 두려움을 느낍니다.

김상헌은 인조에게 지원군을 불러 청을 공격할 것을 제안합니다.

그는 대장장이 날쇠에게 왕의 서신을 지원군의 장수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합니다.

날쇠는 목숨을 걸고 간신히 지원군에게 서신을 전달합니다.

하지만 지원군들도 청의 막강한 군사력에 주눅이 든 탓인지, 서신을 받지 않은 것으로 숨기면서 날쇠를 죽이려합니다.




날쇠는 그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겨우 도망을 칩니다.




인조는 지원군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초조해지고, 주화론을 주장하던 최명길이 인조를 설득하여 청에게 보낼 서신을 작성합니다.

굴욕적인 서신 내용으로 인해 김상헌은 결사적으로 반대하지만, 지원군이 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접한 인조의 선택권은 이미 없습니다.





최명길이 청에 서신을 전달하려고 하는 도중에 청의 군대가 남한산성으로 대포를 쏘아댑니다.

그로 인해 성벽이 무너지고, 그 틈으로 청의 군대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서 공격합니다.




수적으로 열세인 조선군은 버티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죠.

최명길은 청의 황제에게 온힘을 다해 달려가서 그의 자비를 구합니다.




청의 황제는 전쟁을 종료시키고 삼전도의 굴욕을 당합니다.

세번의 절을 하고, 땅에 아홉번을 머리박는 굴욕적 항복 행위를 한 것입니다.




김상헌은 자신이 죽인 노인의 손녀인 나루라는 아이를 날쇠에게 부탁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후 조선은 청의 신하 국가가 되고 조선인 50만명이 청으로 끌려갑니다.

하지만 조선에 남아있는 이들은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병자호란에 대한 역사적인 해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판단을 위해서 인조 이전의 역사적 상황도 알긴해할 것 같네요.


명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서 후금이 힘을 키우고 있을 무렵에 조선의 임금은 광해군이었습니다.

광해군은 망해가는 명나라를 무조건 돕지는 않고, 강홍립 장군을 지원군으로 보내면서 기회를 엿보라고 합니다.


강홍립은 광해군의 뜻을 알아채고 명나라를 도와주는 척을 하면서 후금에 투항합니다.

이런 조치로 광해군이 임금일때에는 후금의 침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인해, 인조가 왕위에 앉게 되고, 금을 배척하고 명과 친하게 지내는 '배금친명' 정책을 씁니다.

이런 상황을 후금이 핑계삼아 조선에 형제관계를 요구하여 전쟁을 일으킨 것이 '정묘호란(1627년)'입니다.


이후 청나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이 청나라 태종때 조선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여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한 것이 병자호란입니다.



여튼 병자호란은 사실 막을 수 있는 전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국력이 약한 상황에서 실리외교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고, 인조 이전에 광해군이 이러한 점을 잘 해낸 것 같습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과 신하들이 명나라에 사대를 했다는 점은 사실 실망스럽긴 합니다.

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백성을 위한다면 조금 더 실리를 추구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레로 막은 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기에 제 의견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상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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